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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대로 가는 길
2000년 9월호 미술이 있는 만남
영화의상 제작자 김 유 선
“배우가 입는 옷 하나 하나가 바로 움직이는 조각품이죠”
영화관이 몰려 있는 종로 3가 극장가를 지나다 보면 우리 영화가 상영되는 극장 매표소에 길게 늘어선 줄을 종종 볼 수 있다. 이런 현상은 적은 자본을 가지고 영화를 제작해야 하는 우리 영화 현실을 비추어 볼 때 얼마 만큼 감독과 배우, 스탭의 영역이 전문적으로 분업화 되어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외국의 초대형 블록버스터 영화 속에 당당히 자리를 구축하고 있는 영화. 그 영화 속 미술의 한 분야인 영화 의상 제작자 겸 코디네이터 김유선을 만나보았다. 영화 속 의상을 담당하는 김유선을 만나러 가는 날은 비가 보슬보슬 오는 토요일 오전, 영화 속 의상을 제작하고 구상하는 그녀는 어떤 의상을 입고 있을까? 분명, 영화 속에서 보여지는 커리어 우먼 같은 이미지를 갖고 있을 거야 라는 궁금증을 가득 담고 그녀를 만나러 갔다. 그녀를 만나기로 한 장소는 일민 미술관 1층에 있는 ‘꽁트’ 라는 까페.
옛날 영화 포스터가 벽면을 장식하고 70년대 DJ가 있는 음악 다방을 연상시키는 곳에서 만난 그녀는 의외로 화장기 없는 맨 얼굴에 수수한 검정 색 티셔츠와 바지를 입고 나타났다. 영화 의상 제작은 심한 육체노동을 필요로 하는 조각의 작업과 같다는 말로 인터뷰를 시작한 그녀와의 대화를 지면에 옮긴다. 영화의상을 하게 된 이유
대학교 4학년 때 친구 소개로 영화 ‘비상구는 없다’ 의 벽화 그리는 작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는 지금처럼 영화 의상 제작을 맡은 것이 아니라 미술작업 아르바이트로 단순히 카페에 걸리 그림 그리는 일을 하게 된 것이죠. 그 일을 계기로 영화 ‘세상 밖으로’ 의 의상을 담당하게 되었고, 그 이후 계속 영화 의상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영화를 처음 하게 되었을 때는 고생을 좀 많이 했죠. 모든 일을 현장에서 부딪쳐 가며 배워야 했기 때문에 힘도 들었지만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았습니다. 학교에서 배운 것을 기준으로 머리 속으로 생각만 하고 있던 것과 제작 현장은 조금 달랐거든요. 영화 의상 제작이란
영화 의상을 제작하게 되었을 때 가장 신경 써 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그건 시나리오를 읽고 분석하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의상을 담당한다고 해서 단순히 의상만을 생각한다면 영화의 흐름을 깨뜨릴 뿐만 아니라 영화의상 코디네이터로서 부족한 것이죠. 흔히 영화를 종합예술이라고 합니다. 그건 어느 한 부분만 만족시켜서는 안되기 때문이죠. 영상, 음악, 조명, 의상, 연기, 연출 등 모든 분야가 한 가지를 목적으로 완벽히 조화가 이뤄졌을 때 좋은 영화, 잘 만들어진 영화라고 하죠. 의상을 제작할 때도 오직 그 영화만을 위한 의상을 준비해야 하는 것입니다. 전체적인 화면, 영상, 색채, 배우가 가지는 캐릭터의 이미지를 충분히 고려한 후 의상을 설정합니다. 시나리오를 분석하는 안목은 이러한 종합적인 분야들을 이해하는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건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 해야 할 일입니다. 영화에 몰입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영화의상은 그때그때 영화에 필요한 컨셉에 따라 전체 의상을 협찬이나 구입으로 진행할 때도 있지만 영화에 필요한 특별한 의상은 직접 디자인해서 제작하기도 합니다. ‘퇴마록’ 의 악령으로 나왔던 추상미의 의상과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 의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고소영의 분홍색 니트는 각각의 영화 분위기에 맞게 특별히 디자인해서 제작한 의상들입니다. 그 밖의 다른 영화에서도 제작한 의상은 빠짐없이 있습니다. 영화 의상 작업은 분명히 창의적인 작업이고 창조성을 지닌 작업입니다. 수많은 캐릭터를 이해하고 그 캐릭터들을 분석하여 의상을 제작하기 때문에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배우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영화를 좋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의상과 미술과의 관계
미술을 전공하려다가 의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전공한 것은 의상이지만 한번도 미술과 의상이 동떨어진 것이라고는 생각한 적이 없어요. 배우가 입는 의상 하나 하나를 움직이는 조각이라고 생각합니다. 미술이라는 작업 중에서 사람과 가장 가까운 조형물로서의 작업, 그러니까 미술작업 중에 가장 대중적이고 실용적인 작업이 의상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의상과 미술을 분리해서 생각하지 않습니다. 미술이라는 부분 속에 의상이 속해 있는 것이고 또 의상 속에서 미술을 발견해 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술과 의상을 굳이 영역을 나누어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죠. 나누어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합니다. 영화의상의 좋은 점과 나쁜 점 일단 내가 좋아하는 작업(영화+의상)을 동시에 할 수 있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이고, 둘째로는 여러 각도에서 옷을 다양하게 만들어보고, 표현해 낼 수 있다는 것을 들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가진 나만의 개성을 보여 줄 수 있는다는 것이 매력적입니다. 나쁜 점 이라면 아직까지 우리나라 영화제작비 여건상 많은 부분을 협찬에 의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영화에 맞는 의상을 제작하고 싶어도 제작비가 없어서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의상을 하나의 영역으로 인정해 주고 그 분야를 인정하고 맡기는 풍토가 자리를 잡고 있지만 몇 년 전만 해도 의상을 중요한 하나의 분야로서 인정하지 않고,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 이라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을 때는 많이 힘들었었습니다. 자신만의 영화의상 철학은
지금의 유행을 따라가기 보다는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10년 후 그 영화를 다시 보았을 때 그 시대의 흐름을 느낄 수 있는 영화의상으로서 대표되는 즉, 새로운 문화를 창조한다는 의미로서 의상을 보여주고자 합니다. 앞으로 하고 싶은 일
나의 브랜드를 가지고 내가 원하는 영화에 모든 의상을 제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영화의상 전문 사이트를 제작하고 있는 중입니다. 영화 의상에 관한 궁금증은 물론, 의상에 관계된 모든 것을 다양하게 보여줄 예정입니다. 영화의상을 하려는 학생에게
일단 무슨 일을 하던 하고자 하는 일에 있어서 그 일을 많이 좋아해야 100% 자신의 감성을 뽑아 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다음에 예술적이면서도 분석적인 안목을 길러야 합니다. 의상을 하든지 미술을 하든지 열린 마음을 가지고 모든 것을 수용 할 줄 아는 마음과 자세를 가지고 있다면 어떤 분야를 하더라도 성공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영화 의상을 하려면 일단 전반적인 영화의 흐름을 파악하고 그 흐름 안에서 자신만의 감각과 창의력을 펼쳐야 하기 때문에 미술 하는 사람들에게 부족한 분석력을 갖추라고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많은 것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찾아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글/심경보. 사진/김형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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