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인터뷰_ 월간 미술 'Artist in Life 3 영화의상 디자이너 김유선'
CNF
2007. 7. 26. 16:06
월간미술
2000년 4월호- Artist in Life 3 영화의상 디자이너 김유선
캐릭터를 창조하는 옷 입히기
무대미술가, 패션 사진가에 이어 이번 달에는 영화의상 코디네이터의 예술세계를 들여 다 보았다. 영화 <세상밖으로>,<퇴마록>등에서 개성 있는 독특한 의상으로 관객들의 시선을 모았던 김유선. 스크린 속에서 그녀가 꾸미는 삶의 풍경은 어떤 옷을 입는지…..
무대미술가, 패션 사진가에 이어 이번 달에는 영화의상 코디네이터의 예술세계를 들여 다 보았다. 영화 <세상밖으로>,<퇴마록>등에서 개성 있는 독특한 의상으로 관객들의 시선을 모았던 김유선. 스크린 속에서 그녀가 꾸미는 삶의 풍경은 어떤 옷을 입는지…..
김유선은 영화 <비상구가 없다>를 통해서 영화판에 처음 뛰어들었다. 대학 4학년 때다. 당시 그녀는 의상 디자인을 전공하며, 영화보기를 즐기는 평범한 미술대학 학생이었다. 별 부담 없이 재미 반 호기심 반으로 시작한 일은 의상하고는 상관없는 세트장 벽화 그리기. 이렇게 시작한 영화와의 인연은 오늘까지 그녀를 있게 한 삶의 원동력이었다.
“스크린을 통해 나만의 세계를 표현할 수 있는 ‘영화 의상’에 묘한 매력을 느낍니다. 연기하는 배우가 입는 옷 하나 하나는 움직이는 조각품이라고 생각해요.” 영화 일에 대한 그녀의 이런 저런 생각을 인터뷰하면서 문득 몇 년 전 유행한 ‘프로는 아름답다’는 광고 카피가 떠올랐다. 자신감 넘치는 그녀에게 어울리는 말이다.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화면에 보이는 세세한 ‘모양새’에 주목하기보다는 흘러가는 이야기에 빠져든다. 장면이 바뀔 때마다 그 연결이 어색하지 않게 만드는 주요 요인 중 하나가 바로 등장인물이 입고 있는 의상이라는 사실을 잘 느끼지 못한다. 누구 하나 고생스럽지 않을 리 없는 영화 일 이지만, 소수 인력으로 수많은 ‘컷!’과 ‘고!’의 틈새를 잽싸게 메우는 영화의상 스태프들의 손놀림은 분주하다. 그 유명한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주인공 비비안 리는 단 몇 분간의 애틀랜타 대화재 촬영을 위해 무려 스물 일곱 번이나 의상을 교체하지 않았던가.
“스크린을 통해 나만의 세계를 표현할 수 있는 ‘영화 의상’에 묘한 매력을 느낍니다. 연기하는 배우가 입는 옷 하나 하나는 움직이는 조각품이라고 생각해요.” 영화 일에 대한 그녀의 이런 저런 생각을 인터뷰하면서 문득 몇 년 전 유행한 ‘프로는 아름답다’는 광고 카피가 떠올랐다. 자신감 넘치는 그녀에게 어울리는 말이다.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화면에 보이는 세세한 ‘모양새’에 주목하기보다는 흘러가는 이야기에 빠져든다. 장면이 바뀔 때마다 그 연결이 어색하지 않게 만드는 주요 요인 중 하나가 바로 등장인물이 입고 있는 의상이라는 사실을 잘 느끼지 못한다. 누구 하나 고생스럽지 않을 리 없는 영화 일 이지만, 소수 인력으로 수많은 ‘컷!’과 ‘고!’의 틈새를 잽싸게 메우는 영화의상 스태프들의 손놀림은 분주하다. 그 유명한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주인공 비비안 리는 단 몇 분간의 애틀랜타 대화재 촬영을 위해 무려 스물 일곱 번이나 의상을 교체하지 않았던가.
새로운 삶의 풍경
김유선이 영화의상을 책임진 첫 작품은<세상 밖으로>. 그녀는 이 영화에서 개성 있는 두 명의 탈옥수와 산전수전 다 겪은 한 여인의 2박3일간 세계를 넘나들었다. 의상 컨셉트는 블랙 코미디이자 로드 무비라는 성격을 고려해야만 했다.
그녀는 이경영과 문성근에게 줄무늬 죄수복을, 심혜진에게는 섹시한 줄무늬 쫄티를 입혔다. 현실에 대한 직접적 모사는 아니었다. 문제는 화면을 통해 실제 사물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이른바 영화적인 대상을 창조하는데 있다. 그 대상은 영화를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간의 상호 은밀한 화합과 이해를 암시함은 물론이다.
그녀의 옷은 자연으로부터 그 겉모양을 빌려왔을 뿐, 독자적인 범주의 또 다른 현실을 엮어낸다. 이 창안에는 단순한 기술이 아닌 예술적 상상력이 개입한다.(패션의 어원 ‘factio’에는 ‘창조하다’의 뜻이 숨어 있다). 그러므로 영화에 등장하는 스타들의 의상은 일상적인 미를 화려하고 영원한 미의 수준에 이르게 하는 힘을 갖는다. 그저 당대의 유행이 아니다. 니콜 베드레(Nicole Vedres)는 “유행의 변화라든가 고증적인 의상이라든가 민속의상 또는 일상복을 만드는 작업과 하등의 또는 거의 (적어도 직접적으로)관계가 없다”고 했다. 그렇다. 김유선의 의상 역시 그러하다. 등장인물의 경제적.문화적 환경과 성장배경, 다른 인물들간의 관계를 따르는 그녀의 세심한 선택은 스크린 밖 현재를 초월한 또 다른 현재와 다름 아니다. 연기자의 진정성뿐만 아니라 그것을 볼 줄 아는 사람에게는 새로운 삶의 풍경이 펼쳐진다.
영화에서 배우들이 언제 어디서 어떤 옷을 입어야 하는지는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시나리오에 대한 완벽한 분석이 우선한다. 그녀는 시나리오를 받으면 우선, 극중 인물의 캐릭터를 파악하고 영화 전체를 이끌어 갈 의상 컨셉트를 설정한다. 이는 카메라가 돌아가기 시작하면서 부딪힐 자질구레한 문제에 대비한 기본 해결책이 된다. 물론, 동일 인물이라 할지라도 맥락을 해치지 않는 의상의 통일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대강의 윤곽이 잡히면 그녀의 컨셉트는 그 범위가 좁아진다. 스타일,색감,소재에 대한 구체적인 아이디어는 인물별로 구분하여 이미지 맵으로 정리한다. 이때 가지는 감독과의 미팅은 감독의 ‘색’과 의상담당 김유선의 ‘색’이 드러나며 합리적인 선택을 찾는다. 영화는 짧고 긴 무수한 장면의 연속이다. 흔히 알다시피 각 장면의 촬영은 현실적인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기에 그 시기를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 “씬 별로 세분화한 ‘의상 연결 표’ 없이는 종잡을 수 없는 촬영 스케쥴과 세트장 분위기에 발맞추기 어렵습니다. 배우들이 입을 의상을 제작, 구입하고 액세서리 및 소품까지 결정하는 일은 그 후의 일이에요.”
영화의상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라고 묻는 문외한 기자의 계속되는 질문에 차근차근 그 과정을 답해 주던 그녀는,”의상 담당자가 영화의 모든 의상을 직접 디자인하고 제작할 여건이 되면 좋겠어요. 지금의 영화제작 여건처럼 협찬과 대여에 상당 부분 의존하려다 보면 분명 한계가 보입니다.”하며 푸념 섞인 바람을 털어 놓았다. 몇 억씩이나 들여 유명배우를 캐스팅하면서도 막상 그들이 연기할 때 입을 옷에는 상대적으로 적은 자본을 투자하면서 많은 효과를 기대하는 영화 제작자들의 인식을 꼬집는다.
색깔있는 선택
김유선은 얼마 전 세 달에 걸쳐 진행되었던 홍상수 감독의 <오!수정>촬영을 마치고 오랜만에 여유를 즐기고 있다. 개봉을 한 달여 앞둔<오!수정>은 흑백영화다. “컬러 영화와는 많이 다를 텐데요?” “흑백은 명도에 의해 결정됩니다.” 그 한 마디 대답에 흑백영화 의상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흑백 영화는 모든 색이 명도로 환원됩니다. 따라서 의상은 모든 색을 명도차에 의해 구분하는 존 시스템(Zone System)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 채도와 광원의 색 온도보다는, 촬영시 노출지수와 광질에 주의해야 합니다. 즉 붉은색과 파란색의 차이는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직 명도에 의해 나타나는 ‘어떤’ 붉은색과 ‘어떤’ 파란색의 차이가 중요합니다.”
<오!수정>의 주 등장인물은 주인공 수정(이은주)과 재훈(정보석), 영수(문성근)이다. 스물여섯 살 방송작가 수정은 한마디로 여우 같은 여자다. 극중에서 그녀가 입는 옷은 고집스러운 면을 잘 보여준다. 어찌 보면 평범하고 어찌 보면 촌스럽기도 하다. 한편 상대역 재훈은 서른 여섯 살 화랑 경영자다. 부자지만 티는 안 낸다. 본능에 솔직하여 가끔은 아이 같다. 짧지도 길지도 않은 어중간한 검정 코트는 어딘지 어눌하게 보인다.
김유선은 얼마 전 세 달에 걸쳐 진행되었던 홍상수 감독의 <오!수정>촬영을 마치고 오랜만에 여유를 즐기고 있다. 개봉을 한 달여 앞둔<오!수정>은 흑백영화다. “컬러 영화와는 많이 다를 텐데요?” “흑백은 명도에 의해 결정됩니다.” 그 한 마디 대답에 흑백영화 의상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흑백 영화는 모든 색이 명도로 환원됩니다. 따라서 의상은 모든 색을 명도차에 의해 구분하는 존 시스템(Zone System)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 채도와 광원의 색 온도보다는, 촬영시 노출지수와 광질에 주의해야 합니다. 즉 붉은색과 파란색의 차이는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직 명도에 의해 나타나는 ‘어떤’ 붉은색과 ‘어떤’ 파란색의 차이가 중요합니다.”
<오!수정>의 주 등장인물은 주인공 수정(이은주)과 재훈(정보석), 영수(문성근)이다. 스물여섯 살 방송작가 수정은 한마디로 여우 같은 여자다. 극중에서 그녀가 입는 옷은 고집스러운 면을 잘 보여준다. 어찌 보면 평범하고 어찌 보면 촌스럽기도 하다. 한편 상대역 재훈은 서른 여섯 살 화랑 경영자다. 부자지만 티는 안 낸다. 본능에 솔직하여 가끔은 아이 같다. 짧지도 길지도 않은 어중간한 검정 코트는 어딘지 어눌하게 보인다.
김유선은 이런 느낌을 깨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의상의 톤이나 질감에 변화를 주었다고 했다. 수정의 밝은 톤과 재훈의 어두운 톤이 흑백 화면에서 명쾌한 대비를 이룬다. 또 다른 인물 영수는 그 둘 사이에 중간 톤의 의상으로 자연스레 섞인다. 그는 수정이 연민으로 대하는 인물인 까닭에 처량한 신세처럼 보인다.
초등학교 때부터 패션 디자이너를 꿈꾸던 김유선. 그 동안 열 편의 영화를 하면서 그녀는 다양한 인생의 옷을 만들었다. 건달, 창녀, 죄수 등 참을 수 없는 삶의 지루함과 반복되는 일상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관계들에 관여하면서 그녀는 여러 삶을 살아온 셈이다. 어제를 살았던 것도, 오늘을 사는 것도 내일을 살 것도 아닌 가상의 스크린 속에서 그녀의 옷은 또 다른 인생을 기다리고 있다. 셰익스피어의 말처럼 “꿈 같은 재료”로 지음 받은 인생을.
초등학교 때부터 패션 디자이너를 꿈꾸던 김유선. 그 동안 열 편의 영화를 하면서 그녀는 다양한 인생의 옷을 만들었다. 건달, 창녀, 죄수 등 참을 수 없는 삶의 지루함과 반복되는 일상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관계들에 관여하면서 그녀는 여러 삶을 살아온 셈이다. 어제를 살았던 것도, 오늘을 사는 것도 내일을 살 것도 아닌 가상의 스크린 속에서 그녀의 옷은 또 다른 인생을 기다리고 있다. 셰익스피어의 말처럼 “꿈 같은 재료”로 지음 받은 인생을.
임 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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